마더 테레사 수녀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사랑의 선교회'를 창립하여, 사랑의 성녀로 일컬음을 받으며 많은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그녀는 1910년 오스만투르크 제국 치하의 위스 퀴프 때인 19287년 아일랜드 더불린에 가서 '성모 수녀회'에 들어간 후 인도로 갔다. 인도에 도착한 그녀는 '로게토 성모 수녀회'의 수녀로서 종신서원을 했다. 이때부터 테라사라고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성 마리아 학교에서 역사와 지리를 가르쳤다. 인도 시민권을 취득한 테레사는 1946년 수녀원을 나와 간호학을 공부하고 콜카타의 빈민촌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1948년 '사랑의 선교회'를 창립하고 2년이 지난 후 교황 피우스 12세로부터 교회법에 따른 인가를 받았고, 1965년에는 바티칸만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교황청 직속 수도회로 격상되었다.
그녀는 보수적인 로마 가톨릭 지도자들의 반감을 사면서도 수녀원 밖에서의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가톨릭 지도자들의 반감을 산 이유가 수녀는 수녀원에서 지내야 한다는 생각에 의해서였다. 그녀는 고아를 비롯해 노인들을 돌보고, 나환자들을 치료하고 돌보는 일에 전력을 다했다. 그녀는 동남아시아, 유렵,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를 비롯해 라틴 아메리카, 중국 등에 사랑의 선교회를 세웠다. 그리고 1971년에는 미국 뉴욕시티에도 사랑의 선교회를 세웠다. 1971년 테레사는 제1회 교황 요한네스 23세 평화상과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이후 그녀는 더욱 활발하게 봉사활동을 펼쳐나갔다.
그녀는 심장질환을 앓으면서도 봉사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무리가 따라 활동하는 데 제약을 받자 1991년 대수녀 원장직을 사임했다. 하지만 마땅한 후계자를 찾지 못해 1997년 인도 출신의 나르 말라 수녀가 임명될 때까지 봉사활동을 계속해나갔다. 150센티미터의 작은 체구로 어려운 일들을 평생 헌신적으로 해온 테레사 수녀는 '참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 위대한 사랑의 성녀이다.
* Mother Teresa 1910-1997
출처 《1일 1페이지 짧고 깊은 지식 수업 365 책中》 -저자, 김옥림 님
김종직은
조선 전기 문인이자 문신이며, 성리학자, 사상가, 교육자이다. 그는 정몽주에서 길재로, 길재에서 아버지인 김숙자에게 이어진 학풍을 이어받아 크게 발전시킴으로써 영남학파의 종조가 되었으며 사람파의 시조가 되었다. 그는 어린시절 총명하여 암기에 능했으며 날마다 수천자씩 기억해 신동으로 불리었따. 15세에 이미 시문에 능해 많은 문장을 지었으며 20세 이전에 뛰어난 문장으로 이름을 크게 떨친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시를 본 어세겸은 크게 감격하여 "나보고 말채찍을 잡고 하인이 되라 해도 달게 받아들이겠다"라고 할 만큼 극찬을 했다. 그는 벼슬길에 올라서도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는데 대표적인 제자로 김광필, 정여창, 김일손, 손중돈, 이복, 권오복, 남곤, 권경유, 남효온, 조위, 이원, 강희맹 등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조선 전기에서 중기로 내려오는 문신 중 뛰어난 학자들은 대개 그의 학품을 이어받은 제자들이다.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많았던 것은 그의 올곧은 정신과 뛰어난 학식, 학행일치 (학문과 행동이 일치하는 것) 때문이다. 성종은 김종직의 학문의 출중함과 올곧은 인품을 높이 샀다. 그의 말이라면 어떤 말도 받아들여 시행할 정도로 그를 신뢰했다. 그에 대한 성종의 믿음은 대단하다. 그는 신분과 집안 배경을 가리지 않고 인재를 등용할 것을 진언하자 성종은 그대로 시행했다. 면학 분위기의 장려를 권고하자 전국에 서원, 향교, 서당을 짓는 등 적극적으로 시행했다. 그는 1463년에 세조에게 불사를 간언 하다가 파직당했다. 1464년에는 세조에게 음양오행 등의 잡학을 장려한다며 극구 반대하다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처럼 그는 대쪽 같은 곧은 절개로 한번 정한 원칙은 반드시 실행했으며, 자신이 한 말에 대해서는 목숨을 내놓을지언정 번복하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지은 조의제문으로 연산군 4년에 무오사화로 참화를 당하는 바람에 그가 지은 책과 시문 등 그에 관한 모든 기록이 불태워지고 말았다. 그는 올곧은 정신과 뛰어난 학문으로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을 보이며 당파를 떠나 많은 사람으로부터 존경받은 현인이었다.
* 1431-1492
출처 《1일 1페이지 짧고 깊은 지식 수업 365 책中》 -저자, 김옥림 님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 & 유명한 학자 노자 업적요약 (1) | 2022.11.11 |
---|---|
춘추전국시대의 학자이자 사상가 묵자 &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김대건 신부 (0) | 2022.11.10 |
미국 출생 시인 월드 휘트먼 & 미국 국무장관 출신 조지 마셜 (0) | 2022.11.08 |
영화배우 찰리 채플린 & 스티븐 호킹 박사 업적요약 (0) | 2022.11.07 |
영국 수상 모리스 해럴드 맥밀런 & 포르투갈 출신 탐험가 페르디난드 마젤란 (0) | 2022.11.06 |
댓글